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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0-07 21:27
[이명범 목사 신학 사상 검증 보고서 Part.2]
 글쓴이 : RHEMA
조회 : 489  
   http://blog.naver.com/jblee713/10175548890 [185]

이명범 목사 신학 사상 검증 보고서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신학사상검증위원회


II. 이명범 목사 신학 사상 검증 보고서 전문

1. 이명범 목사의 개인의 문제점에 관하여
■ 이대위(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약칭)의 연구 보고
[ 이명범씨는 … 1981년 7월 20일 소위 ‘레마선교회’란 단체를 창설하여 … ‘트레스 디아스’와 ‘비다 뉴바’를 도입하여 세력 확장에 이용하고 있으며 … 그녀는 이단자 김기동씨가 운영하고 있는 베뢰아 아카데미 1기생으로서 1980년 5월 10일 … 졸업식을 가졌으며, 그녀의 가르침의 많은 내용이 베뢰아의 사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데도 그녀는 이를 부정하는 것이나, 평신도인 자신이 많은 안수를 하면서도 안수를 하지 않는 것처럼 하는 점이나 … 많은 문제점을 개인적으로 노출시키고 있다. ]
 
위의 연구 보고는 3가지이다. ① 레마선교회는 ‘트레스 디아스’와 ‘비다 뉴바’를 도입하여 세력을 확장한다는 것. ② 베뢰아 아카데미 1기생으로 졸업하고서 베뢰아 사상을 답습하고 있다는 것. ③ 평신도로서 많은 안수 기도를 한다는 것 등 목회자로서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 검증과 평가
▶ (1) 이명범 목사와 레마선교회는 ‘트레스 디아스’와 ‘비다 뉴바’를 도입하여 세력을 확장한다는 것.
검증과 평가: 이명범 목사는 자신이 1981년에 선교와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한 레마성서연구원을 운영하면서 여러 가지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서 은밀하게 그 세력을 확장한 적이 없다. 레마성서연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성경 말씀을 토대로 하여 성경 교육과 기도와 선교에 전력을 다하고 있으며, 현재 예장통합에서 주장하듯이 트레스 디아스와 비다 뉴바는 운영하고 있지 않으며 “레마성서연구원”의 홈페이지(http://rem.or.kr)를 통해서 3박 4일의 렘 위켄드(REM Weekend,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는 영성 프로그램)를 공개하고 있다. 1990년 8월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제1회 인터내셔널 렘 위켄드가 개최된 이래 23년 동안 192회를 21개 나라에서 개최하였고, 약 10만 명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고, 중국 25개성과 10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결론: 이명범 목사와 레마성서연구원은 은밀하게 그 세력을 확장한 적이 없음을 확인했다.
 
▶ (2) 이명범 목사는 베뢰아 아카데미 1기생으로 졸업하고서 베뢰아 사상을 답습하고 있다는 것.
검증과 평가: 1977년부터 1979년까지 김기동 목사의 성락교회에 출석하였고 베뢰아아카데미 1기로 1980년에 졸업했으나, 그 당시에는 많은 신학생들과 목사들(고 하용조 목사, 김삼환 목사, 나겸일 목사, 김지철 목사 등)이 참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참석했었고, 김기동 목사의 소속 교단인 기독교한국침례회가 김기동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1987년 11월 16일)하기 이전이었다. 그러나 김기동 목사의 귀신론에 대한 시비가 있다는 것을 소문으로 알고 새문안교회(예장통합, 김동익 목사)로 옮겨 출석했다.
레마선교회를 창설하게 된 것은 중앙대학교(이사장 임철순)에서 성경을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임철순 이사장의 부인인 이의영씨를 중심으로 하여 시작되었다. 그리고 ‘트레스 디아스’와 ‘비다 뉴바’ 프로그램은 지금도 통합측 교회들이나 여타 건전한 교회들 안에서 활발하게 시행되고 있으나, 본인은 현재 이 프로그램을 전혀 실시하지 않고 있다.
결론: 이명범 목사는 자신이 해명한 대로, 1980년 후반부터는 베뢰아 아카데미의 김기동을 추종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레마선교회는 1년 후인 1981년 7월에 창설되었다. 그런 까닭에 이 목사의 레마선교회가 베뢰아 아카데미를 근본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 (3) 무분별하게 평신도로서 안수 기도 하는 것 등 목회자로서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
검증과 평가: 예장통합은 교인들끼리 아픈 사람이 있으면 기도하지 않고 목사 직함만 있는 사역자만 기도하는지 묻고 싶다. 성경은 환자에 대해서 기도하라고 했다(약 5:14-16). 예수께서도 병자를 위해서 기도하셨고,1) 제자들에게도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으며(마 10:7-8), 제자들은 실제로 치유의 복음을 전함으로(막 16:17-18) “주께서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이 확실히 증거”(막 16:20)되었다.
결론: 이명범 목사가 평신도 시절에 병자를 위해서 그 아픈 자리에 손을 얹고 기도한 것은 성경적이며 복음적이다.
 
 
2. 삼위일체의 문제점에 관하여
■ 예장통합 이대위의 연구 보고
[ 이씨의 삼위일체론은 김기동씨나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같은 것으로서 곧 양태론이다. 이씨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이 예수라고 하며,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은 예수라는 하나님 따로, 여호와라는 하나님 따로 있는 신이 아니라고 한다(이명범, 『믿음 생활을 위한 출발』, p. 209). 이는 김기동씨의 아류인 이초석씨와도 같은 주장이며 … 인격을 하나로 보는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이다.
이씨가 1981년 8월 24일에 강의한 내용에 의하면 성부 하나님은 하나님의 본질이요, 성자 하나님은 하나님의 본체요, 성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본영이라고 하였는데, 이 본질, 본체, 본영이라는 말은 김기동씨가 만들어 낸 전문 용어이다. ]
 
위의 연구 보고는 2가지이다. ①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이 예수라고 하는 바, 이는 김기동의 아류인 이초석과 이태화의 견해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라는 것이다. ② 이 목사의 삼위일체론은 성부 하나님을 본질, 성자 하나님을 본체, 성령 하나님을 본영으로 표현하고 있는 바, 이는 김기동의 삼위일체론과 같은 양태론 이라는 것이다.
 
■ 검증과 평가
▶ (1) 이명범 목사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이 예수라고 하는 바, 이는 김기동의 아류인 이초석과 이태화의 견해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라는 것.
검증과 평가: 이명범 목사는 평신도 시절에 신학적 교육과 소양의 부족으로 인하여 김기동 목사의 삼위일체론적 표현을 답습하였고,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고 축복하고자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실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게 공통적으로 부르는 이름이 예수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이 같은 삼위일체론적 표현이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부적절하다는 것을 알고 바로잡았다.
요한복음(14:26; 16:7)과 사도행전(3:6; 8:38)에서 오직 예수의 이름만 믿으면 되고,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만 구원 받는 것처럼 언급되어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중보자요 구속주이시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제 삼 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죄와 사망과 사탄 마귀를 이기시고 구원을 성취하신 까닭이다. 성령의 이름도 예수, 성부의 이름도 예수, 성자의 이름도 예수라고 획일적으로 부름으로써(참고, 『믿음 생활을 위한 출발』 p.211), 예수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삼위 하나님을 언급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자 됨의 유일성뿐 아니라 구원 사역에 있어서 성부와 성령의 독특한 사역도 퇴색될 수 있다(참고, REM Weekend 183, 2010년 8월,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하나님의 이름”, pp. 18-20); 『믿음 생활을 위한 출발』 pp. 209-211). 이명범 목사는 이 같은 표현의 부적절함을 인식하고서 지금은 쓰지 않고 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예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며 영화롭게 하시고(롬 8:30),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시고(요 3:3, 5; 벧전 1:23) 새롭게 하시며 거룩하게 하신다(롬 8:13; 갈 5:16; 엡 4:22-24; 딛 3:5).
이 목사가 삼위 하나님, 곧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구원하고 축복하고자 하실 때 나타내는 이름이 예수라고 하였는 바, 이 같은 표현은 학자들(나채운 박사, 나용화 박사, 도한호 박사)이 지적한 대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 하나님의 위격 간의 구별을 퇴색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명범 목사 자신이 예수라는 이름을 잘못 사용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이명범 목사는 ‘여호와’, ‘전능한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여호와 이레’, ‘여호와 샬롬’ 등의 호칭으로 부르는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인자’, ‘어린 양’, ‘다윗의 자손’ 등의 호칭으로 부르는 아들 하나님과, ‘보혜사’, ‘진리의 영’, ‘계시의 영’, ‘약속의 영’ 등의 호칭으로 부르는 성령 하나님 간의 각기 구별된 실체를 의심스럽게 만들 소지가 있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
이명범 목사가 의도한 것은 성부 하나님도 구원자이시기에 예수라고 부르는 것이 좋고, 성령도 예수의 이름으로 오셨기 때문에 예수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각기 구별된 삼위의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다(참고, 『믿음 생활을 위한 출발』, pp. 209-211). 이 목사의 이 같은 해석은 삼위 하나님이 각기 구별되어 부르는 호칭뿐 아니라 각기 가지고 계시는 특성(properties)을 희석시킬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삼위 하나님은 각기 영광과 권능에 있어서 동일, 동등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다 같이 불리우실 수 있다. 그래서 성부만이 아니라 성자도 하나님으로(요 1:18; 20:28; 딛 2:13, 요일 5:20) 불리우고, 성령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 불리운다(행 5:3-4). 그러나 ‘예수’라는 호칭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에게만 고유하게 사용되었다(마 1:21; 눅 1:31). 성부 하나님에게도 고유한 호칭들(예: 여호와, 전능한 하나님, 아버지, 만군의 여호와 등)이 있고, 성령 하나님에게도 고유한 호칭들(예: 보혜사, 진리의 영, 계시의 영, 약속의 영, 양자의 영 등)이 특별하게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알게 되었다. 이런 내용은 나용화 박사의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pp. 64-134에서 자료를 갖게 되었다.
 
▶ (2) 이명범 목사의 삼위일체론은 성부 하나님을 본질, 성자 하나님을 본체, 성령 하나님을 본영으로 표현하고 있는 바, 이는 김기동의 삼위일체론과 같은 양태론이라는 것.
검증과 평가: 이명범 목사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호칭과 관련하여 성부 하나님은 본질이요, 성자 하나님은 본체요, 성령 하나님은 본영이라고 표현한 것은 자기 나름대로 정통적인 삼위일체론으로 생각했던 까닭이다. 이 목사는 본질과 본체와 본영의 “본”에 대해서는 영어로 “one essence”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고, “질과 체와 영”은 각기 구별된 세 위격(three persons)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본질, 본체, 본영”이라는 한문 표현은 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김기동 목사의 삼위일체론으로서 신학적으로 부적절한 용어이고, 정통적 삼위일체 교리의 표현과는 다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에 따르면, 삼위일체 하나님은 한 본체(one essence)에 “실체(substance)와 능력과 영원성이 동일한 세 구별된 위격(three persons)이 있다. 성부는 아무에게서도 기원하지 않고 나시거나 나오시지 않으나, 성자는 성부에게서 영원히 나시고(eternally begotten),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영원히 나오신다(eternally proceeding)”(제2장 3항). 예일신학대학원대학교의 신조에 진술된 대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그 본질(essence)에 있어서 다 같은 하나님으로서 그 영광과 권능과 위엄에 있어 동일하시며, 각기 독립된 위격을 가지고 사역하는 분이심을 믿는다.”
이명범 목사는 ‘한 본’을 영어로 ‘one essence’라고 번역했는 바, ‘본질’과 ‘본체’가 일반적으로 신학의 경우 다 같이 ‘essence’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구분이 안 된다. 그리고 ‘한 본’이 ‘질과 체와 영’으로서의 세 위격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할 경우, 삼위일체를 쉽고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이 목사 자신의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 목사가 소개한 양태론의 예화(나라고 하는 한 사람이 어머니, 딸, 아내도 된다)를 연상케 한다.
그러므로 이명범 목사는 이 같은 자신의 표현이 부적절한 것임을 인식하고 이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정통적인 교회의 삼위일체 교리를 숙지하여 가르치고 있다. 이 목사는 이종성 박사, 성기호 박사, 나용화 박사, 나채운 박사의 신학적 가르침을 따라 요한복음 14:16을 해석하면서,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 안에 삼위 하나님,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이 분리됨 없이 함께 계신다고 말하고, 영어로는 “three persons in one Godhead”라고 한 바 있다(REM Weekend 183, 2010년 8월, “성령은 누구이신가?” pp. 4-5). 이제 이 목사는 정통적인 삼위일체론을 수용하여 더 이상 성부를 ‘하나님의 본질의 인격’, 성자를 ‘하나님의 존재의 인격’, 성령을 ‘하나님의 신의 인격’으로 표현하지 않는다(참조: 상게 설교, pp. 10-11). 왜냐하면 위와 같은 표현은 이전의 “본질, 본체, 본영”이라는 표현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명범 목사는 아래와 같이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을 따른다고 했다.
본체와 능력과 영원성에 있어서 동일한 삼위가 신격으로 있으니,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부는 아무에게서도 나시지도 않으며 나오시지도 않으나, 성자는 성부에게서 영원히 나시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히 나오신다.2)
위의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제2장 제3항의 핵심적 명제를 로버트 레이몬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영원히 불변하게 불가분하신 바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은 오직 한 분만이 계시다(유일신 교리). (2)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각기 완전하고 동일하게 하나님이시다(삼위 하나님의 신적 본질의 동질성 교리). (3)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각기 구별된 위격들이시다(삼위 하나님의 존재의 구별성 교리). 이상의 세 개념들이 삼위일체 교리를 요점적으로 제시한 것이다.3)
레이몬드는 삼위일체 교리의 핵심적인 명제를 말하면서, “첫 번째 명제를 부정하면 삼신론의 오류에 빠지게 되고, 두 번째 것을 거부하면 본질적 종속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되며, 세 번째 것을 거절하면 양태론을 받아들이게 된다.”4)고 말하여 정통적인 삼위일체 교리의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안내하고 있다.
결론: 이명범 목사가 신앙의 초보적인 단계에서 신학적인 용어 사용의 미숙이 있었음을 시인하여 본 학술원의 지적을 수용하여 수정했음을 확인하였다. 기본적으로는 장신대학교 총장이었던 이종성 박사, 성결대학교 총장이었던 성기호 박사, 개신대학원대학교 총장이었던 나용화 박사가 가르친 바 삼위일체론과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와 나채운 교수가 작성한 예일신학대학원대학교의 신조를 신봉하여 가르치기로 했다.
 
 
3. 창조론의 문제점에 관하여
■ 예장통합 이대위의 연구 보고
[ 1984년 이씨의 강의에 보면, 창세기 1:1-2에 관해 해석하기를 하나님의 창조와 관계없이 원자 상태가 본래 존재한 것처럼 가르친 바, 이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이씨는 인간의 타락이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 전 뱀과의 대화에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이씨는 예수님께서 사탄을 멸하려고 인간을 창조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목적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사탄을 멸하기 위한 것이라 했다. 또한 선악과가 아담을 망하게 한 것이 아니고 구원의 길을 열어 준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 같은 가르침은 김기동의 베뢰아 사상을 추종한 데서 연유하였다. ]
 
위의 연구 보고는 4가지이다. ① 창세기 1:1-2에 관해 해석하기를 하나님의 창조와 관계없이 원자 상태가 본래 존재한 것처럼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 ② 인간의 타락이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 전 뱀과의 대화에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가르친다는 것. ③ 예수님께서 사탄을 멸하려고 인간을 창조했고, 예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목적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사탄을 멸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는 것. ④ 선악과가 아담을 망하게 한 것이 아니고 구원의 길을 열어 준 것이라고 가르친다는 것.
 
■ 검증과 평가
▶ (1) 이명범 목사는 창세기 1:1-2에 관해 해석하기를 하나님의 창조와 관계없이 원자 상태가 본래 존재한 것처럼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1984년 강의 테이프).
검증과 평가: 1984년의 강의 테이프는 신학적 소양이 부족한 것들이 있었기에 전부 폐기 처분했다. 그런 까닭에 그 당시의 강의나 설교를 근거로 해서 이명범 목사의 신학을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 당시 설교에는 신학적으로 부적절한 표현이나 해석이 있었을 수도 있으나, 창세기 1:1-2에 관해 해석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와 관계없이 원자 상태가 본래 존재한 것처럼 말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하여 이 목사는 창세기 1장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믿는다고 밝힌 바 있다(참고, 『이명범 목사의 신학 사상 검증 내용』 p. 38).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무에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으며, 원자 상태가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목사는 숙지하고 있다.
이명범 목사는 창세기 1:1-2에 관해 무로부터 유로의 창조(Creatio ex Nihilo) 사역을 믿고 있다. 1절은 순수한 창조 행위를 보여 준 반면에, 2절은 그로 인한 초기 상태 내지 상황을 보여 주는 것으로 양자가 뚜렷이 구별할 수도 있다. 7일 창조 이전의 모습 그대로라는 것이다. 즉 빛, 식물, 동물, 사람을 창조하기 이전의 모습이란 것이다. 창세기 1:1-2에 관해 소위 간격설(Gap theory)은 오류가 있다고 본다.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루시퍼(사탄)의 반역과 전락으로 아담 이전에 피조물(pre-Adamic creature)이 루시퍼(Lucifer, 아침의 아들 계명성)와 함께 심판을 받아 지구가 혼돈하고 공허하게(tohu va bohu) 되었다는 것으로, 1절과 2절 사이에 수백만 년의 간격이 있다는 간격설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고 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서 “창조하다”라는 뜻은 히브리어로 “bara(created)”를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무에서 유로의 창조(Creatio ex Nihilo)라는 것이다.
결론: 이명범 목사는 창세기 1:1-2에서 하나님의 무에서 유로의 완전한 창조를 믿는다고 했다.
 
▶ (2) 이명범 목사는 인간의 타락이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 전 뱀과의 대화에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가르친다는 것.
검증과 평가: 이명범 목사는 죄의 기원과 관련하여, 하와가 뱀과 대화할 때부터 죄가 시작되었다고 한 것은 간악한 마귀와의 대화를 시작한 것 자체가 잘못될 수밖에 없다는 필연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마귀와의 대화를 통해 유혹을 받지 않도록 하라는 뜻으로 가르쳤다. 그러므로 사탄 마귀와의 대화와 선악과를 먹은 불순종은 서로 분리된 두 사건이 아니고 하나의 사건의 연속적 과정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음으로 되어진 것이다.
인간의 타락과 관련하여, 예장통합 이대위는 뱀 곧 사탄과의 하와의 대화를 선악과를 따먹은 불순종과 분리시켜 문제 삼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창 2:16-17)을 가지고 뱀이 하와에게 의심을 심어 줌으로써 하나님 자신을 멸시하게 한 데서 죄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이대위는 간과하였다. 칼빈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신학자와 성경 주해자들은 사탄 마귀와의 대화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한 데서부터 이미 죄와 타락이 시작된 것으로 해석한다(참고, 나용화, 『명쾌한 기독교 신학과 생활』 pp. 111-113; 칼빈,『기독교 강요』 제2권 1장 4절).
하와가 뱀(사탄)의 선악과를 따먹으라는 유혹을 받자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6)라고 했다. 이것은 벌써 하와의 마음속에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생긴 것이고, 이런 생각은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했다(요일 2:16). 이런 생각은 바로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라는 행동으로 옮겨진다.
결론: 그렇지만 이명범 목사는 창세기 2:17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심으로 생각하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의 차이를 분별하고 있다. 즉 “생각하는 날에 죽으리라”가 아니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함으로써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음으로 되어진 것이라 이해하고 있다.
 
▶ (3) 이명범 목사는 예수님께서 사탄을 멸하려고 인간을 창조했고, 예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목적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사탄을 멸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는 것.
검증과 평가: 이명범 목사는 “하나님이 마귀를 멸하려고 인간을 창조하셨다.”라고 가르쳤는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피조물을 즐기는 것이다(참고, 조종남, 『기독교 신학 개론』).
예장통합 이대위의 연구 보고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사탄을 멸하려고 인간을 창조한 것으로 이 목사가 주장했다고 하고, 하와가 선악과를 먹음으로 해서 결과적으로는 인간을 구원하러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실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이 목사는 주장했다고 한다. 이대위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에 관하여 이 목사가 인간의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탄을 멸하러 온 것으로 주장했다고 여겨 문제 삼았다. 즉 사탄을 멸하는 것과 인간을 구원하는 것을 분리시켜 생각함으로써 이 목사를 문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역뿐만 아니라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나타나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사역을 보면, 악령을 제압하고 멸하여 승리하는 것과 인간을 마귀의 올무에서 구원하는 것은 하나의 구원 사건이다. 마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첫 번째 사역은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서 더러운 악령 들린 자를 치유하는 것이었고(막 1:21-28), 마지막 사역도 변화산에서 내려오시면서 더러운 악령 들린 소년을 치유하는 것이었다(막 9:14-29). 그리고 마가복음서에서 첫 번째 부활의 증인이었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일곱 악령을 쫓아내 준 여자였다고 특별하게 언급되어 있으며(막 16:9), 믿는 자에게 따르는 첫 번째 표적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령을 쫓아내는 것으로 강조되어 있다(막 16:17). 또한 바울의 해석에 의하면, 예수님은 십자가로 마귀를 무장 해제하고 승리하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셨으며(골 2:15), 히브리서에 의하면,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마귀를 멸하시고 자기 백성의 죄를 속죄하려는 것이었다(히 2:14-18).
결과: 이대위는 사탄을 멸하는 것에 대해 누군가가 언급하기만 하면 김기동의 베뢰아 사상을 그대로 추종한 것으로 문제 삼는데, 이대위의 이 같은 편견은 반성경적이고 비복음적인 것으로 오히려 비난 받아 마땅하다. 바울에 의하면, 우리가 회개하고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되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딤후 2:26).
 
▶ (4) 이명범 목사는 선악과가 아담을 망하게 한 것이 아니고 구원의 길을 열어 준 것이라고 가르친다는 것.
검증과 평가: 예장통합 이대위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타락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있게 된 것으로 이 목사가 가르친 것을 문제 삼았다. 이에 대하여 이 목사는 존 밀턴의 『실락원』에 나오는 “팰릭스 쿨파” 개념(happy fault, 혹은 fortunate fall의 개념) 을 들어 해명하였다. 그런데 칼빈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중보자로서 이 땅에 오시게 된 것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의 결과로 인하여 하나님이 작정하셨고 또 필요하게 된 것이다(제2권 6장 1절, 12장 1절).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의 타락의 결과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야 했고, 또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사탄 마귀를 멸하러 그가 오셨다고 한 이 목사의 가르침은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옳다.
이 목사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이해함에 있어서 마귀를 무장 해제하는 것으로 보았고, 또 예수님의 성육신의 목적을 각색 병든 자들을 구원하실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는 데 있는 것으로 보았다. 즉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에서의 피 흘려 죽으신 것을 인간의 구원 및 마귀를 멸하신 것과 관련지어 가르쳤다(참고, REM Weekend 183, 2010년 8월, “예수는 누구이신가? 진리”, pp. 20-21).
그리고 선악과를 먹는 순간 그것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고 하여 예수님이 오실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인간의 타락 때문이요, 또한 인간을 타락시킨 사탄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였다고 가르친 것으로 이대위가 지적하였다. 이대위가 문제 삼은 요점은, 이 목사가 주장한 바에 의하면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탄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며, 이는 김기동의 마귀론을 따른 것이라는 것이다.
결론: 그러나 이명범 목사는 존 밀턴의 『실락원』 12편(범우사, 1992년, p. 163)에 나오는 바 ‘팰릭스 쿨파’(felix culpa), 곧 ‘행복한 죄’(happy sin) 또는 ‘다행스런 타락’(fortunate fall)이라는 신학적 개념을 염두에 두고서 말한 것이다. 아담의 죄는 잘못이지만, 그것 때문에 결과적으로 예수님이 오셔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졌고, 따라서 인간에게 구원의 길이 열린 것에 대해 감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즉 이명범 목사는 인간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의 한없는 은총을 강조한 것이다.
 
 
4. 인간관의 문제점에 관하여
■ 예장통합 이대위의 연구 보고
[ 이씨가 ‘영, 혼, 육’의 삼분설에 근거하여 ‘혼’에게만 지정의의 인격이 있고 ‘영’은 단지 신과 교제하는 능력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 바, 이는 김기동이 말한 바 ‘영’은 인격이 아니라 항구적 가치를 가진 존재라고 한 사상을 따른 것이다(참고, 김기동, 『마귀론』 상, p. 80; 『마귀론』 하, p. 62).
이씨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뱀에게 흙을 먹으라고 저주하신 것은 사탄이 인간의 지상 영역만 지배할 수 있다는 뜻이고 사람의 영은 건드릴 수 없으며, 따라서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에게도 흙으로 돌아가라고 한 것은 이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는 결국 범죄한 인간의 영 속에는 사탄이 못 들어왔으니 영은 타락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사탄의 지배 아래 들어간 흙인 육체만을 위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이씨가 창세기 1장에서는 인간이 육과 혼(인격)만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고, 창세기 2장에서는 인간에게 영이 주어졌다고 한 바, 이는 김기동의 이중 아담론과 같다. 김기동에 의하면, 창세기 1장의 인간은 혼과 몸만 가진 동물의 자웅을 칭하는 것이요, 2장의 인간은 그 중에 뽑힌 개화된 인간, 즉 영을 가진 존재라고 주장하는 소위 이중 아담론과 같은 것이다. 김기동, 『마귀론』 상, p. 80-83). ]
 
위의 연구 보고는 ① 이명범 목사는 ‘영’은 인격이 아니라 항구적 가치를 가진 존재라고 한 사상을 따른 것. ② 인간의 영은 타락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사탄의 지배 아래 들어간 흙인 육체만을 위한 것이라는 것. ③ 창세기 1장의 인간은 혼과 몸만 가진 동물의 자웅을 칭하는 것이요, 2장의 인간은 그 중에 뽑힌 개화된 인간, 즉 영을 가진 존재라고 주장하는 소위 이중 아담론과 같은 것이라는 것.
 
■ 검증과 평가
▶ (1) 이명범 목사는 “역시 김기동씨의 사상으로 김기동씨가 영은 인격이 아니라 항구적 가치를 가진 존재라고 한 것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는 것.
검증과 평가: 이명범 목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으며, 이것은 최삼경 목사가 조작한 말이다. 인간의 영이 인격이 아니면 유령이란 뜻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이대위의 연구 보고서는 이명범 목사와 크게 다르고 이대위가 왜곡한 것이며, 이대위는 이 목사의 인간론을 왜곡시켜 김기동의 인간론을 추종한 것으로 억지를 부렸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이 목사의 해석은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과 관련이 있고(제4장 제2항), 복음주의적이다.5) 하나님의 형상은 이 목사의 해석처럼 역동적, 관계적 개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영적인 존재, 이웃과의 섬김과 사귐을 가지고 사는 사회적 존재이자, 피조물에 대해 정치적 노력을 하는 권위적 존재인 것이다.6) 그리고 이명범 목사의 창세기 2:7의 가르침이 성경적이며 복음적이다.
예장통합의 이대위의 주장은 이명범 목사의 인간론이 김기동 목사의 사상을 추종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억지 왜곡이다. 이명범 목사의 인간론 주장은 지극히 성경적이요 복음주의적임이 확실해졌다.
인간은 기능면에서 구분해 볼 때 영과 혼과 육체를 가진 존재이다(참고, 『경건 생활을 위한 출발』 p. 9). 영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혼은 정신으로서 지정의를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육체는 오감(후각, 촉각, 시각, 미각, 청각)을 가지고 있다. 이명범 목사는 “영은 인격이 아니라 항구적 가치를 가진 존재이다.”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
이대위에 의하면, 이명범 목사가 영의 타락을 부인한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인간의 타락은 영과 혼과 육의 전인적인, 또는 전적인 타락임을 본인은 믿는다. 그리고 이대위는 본인이 김기동의 이중 아담론을 추종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으나, 이중 아담론은 성경적으로 잘못된 해석인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으며,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것을 기록하였고, 창세기 2장은 인간 창조의 구체적인 방법을 기록한 것으로 알고 믿는다.
 
▶ (2) 이명범 목사는 인간의 영은 타락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사탄의 지배 아래 들어간 흙인 육체만을 위한 것이라 했다는 것.
검증과 평가: 이명범 목사는 인간의 타락은 전적이고 통전적인 타락임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인간의 어느 한 부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인적인 것임을 믿는다고 했으니 재론할 필요가 없다.
이명범 목사는 창세기 1장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것을 가르치되, 하나님의 자연적 형상(natural image of God), 정치적 형상(political image), 도덕적 형상(moral image) 등으로 말했다. 자연적 형상이란 하나님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 바,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도록 되어 있는 영적 존재를 의미했다. 정치적 형상이란 다른 피조물을 관리하는 능력을 의미하고, 도덕적 형상이란 이웃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며 살게 되어 있는 바, 사랑의 관계, 정의 관계, 자비의 관계, 순결의 관계를 의미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 이웃 및 자연과 더불어 관계를 가지고 사는 바, 영적, 정치적, 도덕적 존재인 것이다(참고, 『믿음 생활을 위한 출발』 pp.42-43).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이 같은 이 목사의 해석과 가르침은 이대위의 연구 보고와는 크게 다르다. 이대위는 이 목사의 인간론을 왜곡시켜 김기동의 인간론을 추종한 것으로 억지를 부렸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이 목사의 해석은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과 관련이 있고(제4장 2항) 복음주의적이다(참고, 윌리암슨,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 강해』 나용화 역, p. 76). 하나님의 형상은 이 목사의 해석처럼 역동적, 관계적 개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영적 존재, 이웃과의 섬김과 사귐을 가지고 사는 사회적 존재이자, 피조물에 대해 청지기 노릇을 하는 권위적 존재인 것이다(참고, A. 후크마, 『개혁주의 인간론』 pp. 131-145; 레이몬드, 『최신 조직 신학』 p. 550; 나용화, 『기독교 신앙의 진리』 pp. 152-153; 『성경에서 계시받고 인생을 찾다』 pp. 105-110).
 
▶ (3) 이명범 목사는 창세기 1장의 인간은 혼과 몸만 가진 동물의 자웅을 칭하는 것이요, 2장의 인간은 그 중에 뽑힌 개화된 인간, 즉 영을 가진 존재라고 주장하는 소위 이중 아담론과 같은 것이라는 것.
검증과 평가: 이명범 목사는 이중 아담론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장 통합 이대위가 자료로 제시한 이명범 목사의 저서, 『믿음 생활을 위한 출발』 45쪽에는 전혀 그런 문구가 없다.7) 이 내용은 이대위가 조작한 내용이어서 언급할 가치가 전혀 없으며, 예장통합의 이대위가 조작된 내용으로 이명범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한 것은 마땅히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명범 목사는 창세기 2:7을 해석하면서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코에 하나님이 생기, 곧 영(히브리어, 네쉬마)을 불어넣음으로 ‘사는 존재’, 곧 생명체(living being)가 되었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영을 받아 창조된 인간이 영적 존재이면서도 흙으로 만들어진 까닭에 연약한 존재이며, 하나님과의 교제와 이웃과의 교제가 동시에 필요한 존재이고, 육체를 위해서는 땅에서 난 음식물을 섭취해야 하는 존재로 이 목사는 가르친 것이다(참고, 『믿음 생활을 위한 출발』 pp. 45-46). 창세기 2:7에 대한 이 같은 이 목사의 해석은 성경적이요 복음주의적이다. 최초의 사람 아담은 성령의 생기로 창조된 까닭에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영적 존재, 사회적(도덕적) 존재, 권위적 존재로 살게 된 것이다(참고, 나용화, 『명쾌한 기독교 신학과 생활』 p. 109).
결론: 이대위의 연구 보고와는 전혀 다르게 창세기 1장과 2장에 근거한 이 목사의 인간론은 김기동의 이중 아담론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오히려 복음주의적인 성경적 인간론이다(참고, 후크마, 『개혁주의 인간론』 pp. 349-362; 레이몬드, 『최신 조직신학』 pp. 543-544).
 
 
5. 성경관의 문제점에 관하여
■ 예장통합 이대위의 연구 보고
[ 이씨는 성경은 우리 영에 필요한 영의 양식이기 때문에 성경을 이성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하여 성경을 반이성적으로, 그리고 신비주의적으로 이해한다. ] 
 
위의 연구 보고는 ① 이명범 목사는 성경을 반이성적으로, 그리고 신비주의적으로 이해한다는 것.
 
■ 검증과 평가
▶ (1) 이명범 목사는 성경을 반이성적으로, 그리고 신비주의적으로 이해한다는 것.
검증과 평가: 이것은 예장통합 이대위가 조작한 내용이다. 이명범 목사의 저서, 『믿음 생활을 위한 출발』 15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이성의 한계를 말하면서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성에 받아들여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그 어떤 척도로써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문을 열고 신앙으로만 받아들임으로써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될 것입니다.”8)라고 말했다. 이명범 목사는 예장통합의 이대위가 주장한 말을 하지 않았으며 조작된 내용으로 일고의 가치가 없음을 밝혀 둔다.
 
 
6. 연구 결론
■ 예장통합 이대위의 연구 결론
[ 본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김기동씨의 사상과 별 차이가 없는 극단적인 신비주의 형태의 이단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렘’ 집회 시 고고 춤을 방불하는 춤판을 벌이고 있다는 점은 염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위의 연구 결과는 이명범 목사는 극단적인 신비주의 형태의 이단이라는 것.
 
■ 검증과 평가
▶ (1) 이명범 목사는 극단적인 신비주의 형태의 이단이라는 것.
검증과 평가: 이명범 목사는 김기동 목사가 이단으로 규정되기 전에 베뢰아 아카데미를 졸업했고, 문제가 있다는 소문에 새문안교회로 옮긴 후에는 그곳과 관계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극단적인 신비주의의 형태이다.”라고 했는데, 무엇이 극단적인 신비주의형태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예장통합이 제77차 총회의 “연구 결론”에서 사실이 아닌 조작되고 왜곡된 이대위의 독선적인 연구 보고에 근거하여 이명범 목사와 레마성서연구원, 예일교회, 그리고 예일신학대학원대학교에 큰 피해와 고통과 무시와 경계의 대상이 되도록 하여 개인과 기관에 큰 폐해를 준 것은 마땅히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는 ‘렘’ 집회 시 고고 춤을 방불하는 춤판을 벌이고 있다는 점은 염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라는 말은 정말 가소로운 코멘트이다. ‘렘’ 집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의 기쁨이 얼마나 강렬했으면 마치 다윗이 법궤 앞에서 너무 기뻐서 바지가 내려가도록 춤을 추었듯이 모두가 덩실덩실 춤을 추었겠나! 삶의 기쁨과 춤이 없는 인생은 불쌍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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